오일러 정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가?

2024. 9. 8. 15:07Ray 수학

오일러 공식

1752년, 오일러는 볼록한 다면체의 꼭짓점($V$), 모서리($E$), 면($F$)의 개수 사이에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함을 발견했습니다.[^1]

이 공식은 오일러 이전에도 이러한 패턴이 다면체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것이 모든 다면체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오일러가 처음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흔히 오일러 지표(Euler characteristic)라 불리며 폐쇄된 면을 가진 공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학적 속성을 나타냅니다.

 

$$\chi =V-E+F$$

 

정리의 이름과 달리, 완전한 첫 증명은 다른 수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각 수학자들은 독특하고 창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 공식을 증명했으며, 특히 코시의 증명 방법이 주목을 받았습니다.[^2]

 

코시의 증명

코시는 오일러의 공식을 직관적인 기하학적 방법으로 증명하였습니다. 그의 증명은 다면체를 평면으로 전개하는 과정과 평면 지도를 삼각형으로 분할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4]

1단계: 다면체를 평면으로 전개하기

먼저, 다면체의 한 면을 잘라내고 나머지 면들을 평면 위에 펼쳐서 평면 지도를 만듭니다. 이때, 꼭짓점($V$)과 모서리($E$)의 개수는 변하지 않지만, 면($F$)의 개수는 $1$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평면 지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합니다.

$$V - E + F = 1$$

2단계: 평면 지도를 삼각형으로 분할하기

평평하게 펼쳐진 평면 그래프에서, 삼각형이 아닌 다각형을 찾아 대각선을 그어 삼각형으로 만듭니다. 대각선을 그을 때마다 모서리($E$)와 면($F$)의 개수가 각각 $1$씩 증가하지만, $V - E + F = 1$이라는 관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3단계: 삼각형을 하나씩 제거하기

이제 그래프에서 모든 면이 삼각형으로 분할되었다고 가정합니다. 삼각형을 하나 제거할 때, 모서리를 하나 제거하거나 또는 모서리 두 개와 꼭짓점 하나를 동시에 제거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V - E + F$ 값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계속하면, 최종적으로 한 개의 삼각형만 남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삼각형에서 $V - E + F = 1$이 성립하므로 증명은 완료됩니다.

 

다면체란 무엇인가?

이러한 증명은 직관적입니다. 정육면체나 정사면체와 같은 다면체에 대해서는 손쉽게 증명할 수 있죠. 그러나 코시의 증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코시의 생전에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위상수학적 결과를 암묵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모든 다면체는 한 면만 제거하면 평평하게 펴 놓을 수 있을까요?

 

 

다음 그림과 같은 육면체 가운데 구멍이 뚫린 다면체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다면체에서의 오일러 지표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앞선 방법과 같이 지표를 구하기 위해 윗면을 제거해보겠습니다. 윗면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물체를 연속적으로 변형해서 평면에 펼칠 수 있을까요? 앞선 다면체 처럼 간단하지 않아보입니다. 왜냐하면 점을 잇는 선들이 앞선 예시에 비해 너무나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증명을 하지는 않고, 그냥 점, 선, 면의 관계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양은 두 육면체를 겹치고 두 육면체의 꼭짓점을 서로 연결한 모양을 가집니다. 따라서 점의 개수는 $8 \times 2 =16$개, 선의 개수는 $12 \times 2 + 8=32$개 입니다. 면의 개수는 조금 복잡합니다. 뚫린 부분이 선으로 연결되면서 $4$개의 면으로 분할 되었기에 이를 고려하면 $4 \times 2 + 4\times2=16$입니다. 그러므로 오일러 지표는 $0$이 됩니다.

 

$$\begin{align}
\chi &= V -E +F\\
&= 16 - 32+16 = 0
\end{align}$$

 

여러개의 면으로 둘러싸인 다면체임에도 불구하고 오일러 지표가 $2$가 되지 않죠. 그렇다면 이 도형은 다면체가 맞기는 한걸까요?

 

 

위상수학

오일러 지표는 단순한 기하학적 대상인 다면체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곧 기하학적 구조의 근본적인 특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수학자들은 다면체에 대한 연구를 공간의 연속적인 변형에 의해 변하지 않는 속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발전시켰죠. 앞선 오일러 지표가 $V - E + F = 2$라는 성질은 볼록한 다면체에서만 얻어낼 수 있습니다. 흔히 '구'라고 불리는 것을 변형한 형태로 자기 자신과 교차하지 않으며, 구멍이 없는 것이죠.

 

따라서 오일러 지표가 $V - E + F = 0$인 물체는 볼록한 다면체라 할 수 없습니다. 앞선 예시처럼 구멍이 있는 물체는 토러스(torus)라고 불리죠. 두 물체는 기하학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입니다. 구를 교차하거나 구멍을 내지 않고서는 절대 토러스를 만들 수 없죠. 공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구멍이 있는지와 같은 속성은 그 도형이 갖는 근본적인 성질입니다. 그러므로 오일러 지표가 다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두 도형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두 도형이 동일하다면, 그들의 불변량(불변하는 특성, invariant)도 반드시 같아야 하고, 반대로 불변량이 다르다면 두 도형도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변하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태동하게 되는데 바로 '위상수학(Topology)'입니다.

 

위상 수학의 활용

 

서울시는 최근에 40년 만에 바뀌는 지하철 노선도의 최종 디자인을 발표했습니다. 시민과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원형으로 2호선을 나타내고, 다이어그램과 표기 요소을 변경했죠. 기존 노선도가 1980년대의 형태를 유지한 채 노선만 추가돼 복잡했기 때문입니다.[^3]


노선도에서 중요한 것은 각 역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즉 그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역 간의 연결 관계는 그들이 물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보다 더 중요하죠. 따라서 각 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바로 위상수학이 다루는 핵심 개념인 '연결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 지하철 노선은 복잡하지만, 노선도에서는 공간을 연속적으로 변형시켜도 본질적인 특성을 유지하죠. 이처럼 위상수학을 실생활에 적용한 결과 역 찾기 소요 시간을 최대 55% 단축시키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상수학은 주식시장의 붕괴와 같이 사회 과학에서 적용되는 재난 이론(catastrophe theory)에도 응용될 수 있습니다. 재난 이론은 정량적 분석보다는 정성적 분석에 중점을 둡니다. 언제 또는 어느 정도로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일어날 것인가 아닌가를 따져야 하죠. 과학에서의 수학적 모델은 미적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행성의 규칙적인 회전, 가열되는 가스의 압력 점진적 증가, 떨어지는 물체의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속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댐의 갑작스러운 붕괴, 물에서 얼음으로의 급격한 전환, 거품의 폭발과 같은 것들은 어떤가요? 불연속성은 예측이 어려운 돌발적 변화를 나타내며, 이러한 변화들은 전통적인 해석 기하학이나 대수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위상수학은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고, 불연속적인 전이가 언제 발생하는지, 그리고 종종 예측하기 어려운 전이가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충격파가 전파되는 동안 매체의 압력이나 밀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하거나, 심리학에서 환자의 기분 변화 패턴을 분석하는 모델을 제공합니다.)

 

미적분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위상수학을 직접적으로 접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매번 위상이 뭐냐라고 물어보면 도넛이랑 컵이랑 같다는 내용만 주구장창 반복하죠. 하지만 위상 수학은 형태와 구조의 근본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 수학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면체를 넘어 현실세계에 적용되며, 현대 수학의 중심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죠.

 

[^1]: Euler’s theorem on polyhedrons
[^2]: Euler's polyhedron formula
[^3]: 서울 지하철 노선도, 40년 만에 변경
[^4]: An elementary proof of Euler's formula using Cauchy's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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