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8. 21:21ㆍRay 수학
책에서 매일 보던 수학자들은 유럽사람들 뿐이라
우리나라의 수학자들을 한번 찾아보았다.
대한민국의 수학자만 다루기엔
5000년의 무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수학자들이 많아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수학자들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1396 ~ 1478
정인지
조선의 제 24대 영의정으로
세종대왕 때는 기술관료로써
훈민정음 창제 등 문화·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명신이었으나,
세종 사후에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동조하며
훈구파의 중추로 권력을 누린 권신으로 변모한 인물이다.
아 잠깐.. 수양대군,, 훈구파..
수학채널에서 문과의 냄새가 나는거 같은데
이게 성리학의 맛인가.. 쨋든
정인지는 천문과 산술에 뛰어난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세종은 정인지를 두고
"간의, 규표, 흠경각, 보루각 등의 제작에 있어
다른 신하들은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나
정인지만이 이를 함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실제로 세종은 정인지를 앞에 두고 수학을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을 정인지에게 직접 물어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쉽게 말해 정인지는 세종대왕의 수학선생님이었다.
세종실록에 세종대왕이 계몽산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세종대왕이 말씀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아니 수학이 필요없다니..
세종대왕님… 문과...
정인지는 천체의 움직임 같은 천문 현상들의 관계를 종합하여
칠정산 내편을 편찬했다.
칠정산이란 1444년 만든 우리나 최초의 역법으로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총 7개의 천체의 운행을 계산하는
방법이라 하여 칠정산이라 했다.
정인지는 칠정산을 만들 때 계산이 워낙 정밀해서
아무리 노련한 일관도 정인지의 계산을 따라잡을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하였고, 이 설계를 바탕으로 이천이 최종 제작하였다.
지금까지 장영실이 만든지 알았었는데
장영실은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이천의 책임 하에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정인지는 공법 논의를 부활시킨 관료로서,
삼남 지방의 모든 토지를 심사하여
토지의 등급을 정한 어마어마한 일을 실행한 사람이다.
기존의 답험손실법보다 훨씬 더 예측가능하고
효율적인 조세 징수체계를 갖출 수 있었으며,
백성들의 실질적인 세부담 역시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지금쯤 보면 국세청장찍고 국무총리까지 간 사람이다.
1406~1465
이순지
1442년에 조선 독자의 역법인 칠정산을 앞에 말한 정인지와 편찬해 냈다.
칠정산내편은 중국역법을, 칠정산외편은 아랍역법을 참조해 만든 것이다.
그를 통해 조선은 천체의 운행을 한반도의 땅과 하늘에 맞춰 계산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내용은 2019년 1월 제 42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에도 출제되었다.
15세기 과학자라곤 장영실밖에 몰랐던 문과들에겐 충격과 공포
장영실이 개발한 혼천의, 간의, 자격루의 제작에도 참여 하였으며
또한 수학에도 능해 토지 측량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칠정산을 만들때 일화가 유명한데
이순지가 칠정산을 만들고 있을 때,
나라의 중요한 국책사업인 역법 개발사업에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자
세종이 이순지한테 이유를 물었다.
이순지는
진급이 느려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세종이 "그 일 하는 사람들 진급을 최대로 올려라. 그럼 되느냐?"
그러니까 이순지가 또
아 그걸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일은 고되나 봉급은 적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그럼 봉급만 올려주면 되느냐?" 그러자
이순지가 " 기관장이 직책이 낮은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래서 세종이 얼마나 높으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이순지는 당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고있던 정인지를 지목했다.
세종은 당연히 콜을 외쳤고, 역법 개발사업은 차질없이 진행이 되었다.
연봉협상부터 진급까지ㅋㅋ 사회생활 만렙이다 ㅋㅋㅋ
드라마 대왕세종, 장영실, 뿌리깊은 나무,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에도 나오므로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찾아보길 바란다.
인생은 이순지 처럼
(1646년~1715년)
최석정(崔錫鼎)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수학자 주화파의 대표였던 최명길의 손자이다.
현종 13년, 1672년에 관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숙종때 무려 9번이나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붕당정치가 망연하던 시대였기에 소론이었던 그는 사직을 반복했다.
구수략이라는 수학 서적을 편찬했다.
구수략에는 각종의 마방진이 실려 있다.
마방진이란
n2개의 수를 n × n 사각형에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같도록 배열한 것이다.
첫째로 9x9정사각형에 3x3 마방진[1] 9개가 있는 마방진이 있다.
둘째로 1부터 n까지 한줄에 한개씩 쓴
라틴 방진을 가로 세로로 겹친 그레코 라틴 방진을
세계 최초로 연구하였다. 캬~ 주모
한 육각형에 오는 숫자의 합이 같도록 한 지수귀문도를 창시하였다. 주모 샤따 내려
(1684~?)
홍정하
그가 쓴 책인 구일집에
복잡한 이항계수의 정리,
10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의 풀이까지 담아
조선만의 방정식 이론을 발전시켰다.
조선 최초로 얻어냈다.
이게 별로 아닌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조선의 방법이라는 것은
지금과 같이 y=f(x)같이 수식을 푸는게 아니라
한문으로 수학을 서술해서 풀었다는 것이다.
그냥 미친 것같다.
1713년 청나라에서 온 사신이자 수학자인 하국주와
조선에서 서로 수학배틀을 한게 유명한데
하국주가 문제를 내면 홍정하가 싹다 맞춰내고
마지막에 홍정하가 하국주에게 원의 넓이 구하는 문제를 내니까
원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몰랐던 하국주
돌아가서 다음날 원의 내접한 정오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삼각함수 문제를 가져와서
삼각함수를 모르는 홍정하가 어떻게 푸는거냐 물어보면서
친해졌다는 후일담이 있다.
수학으로 하나되는 훈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 혹시나 하는 말인데 그 당시의 원주율은 3으로 계산했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수학자들을 알아보도록하자.
(1922 ~ 2005)
이임학
함경남도 함흥시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활동한 수학자이다.
자신의 성을 딴 리 군을 연구하여 군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들어가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시절 이임학은 ‘수학 천재’로 학생들 사이에서 전설 같은 존재였고,
물리학보다 수학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식민지 교육의 일환으로
실용학문을 익히도록 유도한 탓에 경성제대에는 수학과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물리학과를 택했다.
해방 후 경성대학 시절 김지정, 유충호와 함께 수학회의 투표로 교수에 임용되었으나,
미군정기인 1946년 일제시대의 여러 단과대학들을 통폐합하여 단일 종합대학인
국립서울대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국대안을 발표하자
국대안에 반대하여 사임한다.
1948년까지 2년간 국대안 파동 및 그 수습 과정에서
대한민국 학계는 활동 불능 상태에 빠졌고,
많은 인력들이 미국이나 북한으로 연구 환경을 찾아 이탈했다.
이임학 박사도 김일성대학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나
방북 기간 중 공산주의 북한 사회에 반감을 느껴 이후 서울대로 복귀했다.
그의 유명한 일화로 1947년 청년 시절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이 버린 책 중에서 수학 학회지를 발견하여 읽다가
저명한 수학자인 막스 초른(Max Zorn)이 쓴 논문을 읽고
초른이 잘 모르겠다는 문제를 풀어 그에게 보냈다.
막스 초른은 이를 이임학의 이름으로
미국 수학회지에 대신 투고하여 채택되었다.
이 논문이 이임학의 첫 논문이자
외국 학술지에 실린 최초의 한국 수학논문이다.
이 논문은 49년 미국수학회 학술 저널에 출판 됐지만,
이임학은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논문이
세계적인 저넉에 실린 것도 모르고 있다가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알게되었다고 한다.
막스초른도 대단한게 나 같았으면 내가 풀었다고 올릴만도 한데
논문으로 정리하여 대신 발표해준 것을 보면
학자적 양심이 있는 수학자이다.
미국공보원(USIS)에서 Mathematical Reviews를 보다가
한 논문의 미비점을 지적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장학금을 주겠다는 답장을 받고
53년 캐나다로 건너간 이임학은
5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후 과정을 마친 후에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며
유한단순군의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0년 그는 이곳에서 리 군(Lie group)의 F4, G2가
단순군임을 발견해 일약 국제 수학계에 우뚝 선 인물이 된다.
F4, G2는 그의 이름을 따서 리 군(Ree group)으로 부른다.
아재개그인거 같은데.. 쨌든
이임학 교수는 북미에 머무르며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캐나다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여권을 연장하기 위해
주캐나다 한국영사관을 찾아갔는데 거기서 여권을 몰수당한다.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는데
캐나다 정부는 인도적 조치로 영주권과 시민권을 주었고
이임학은 계속 캐나다에 남게 된다.
국가의 소환 명령에 불응한 이임학 교수는
학술 교류를 위한 북한 방문 경험도 있었으며,
미처 탈북하지 못한 가족들의 소식을 들으려다
남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북한과의 서신 교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까지 했다.
이후 이임학은 입국금지를 당하게 된다.
1996년 대한수학회 창립 50주년 기념회가 되어서야
입국금지가 취소되었고, 그가 타계한 지 1년이 지난
2006년에 그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세계 수학의 중심지였던 독일과 폴란드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과 나치를 피해 수많은 학자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넘어가서 20세기 유명 학자들의 일대기들을 보면
유럽에서 태어났다가 이후 전쟁 중에 미국으로 넘어가 정착한 사람이 대다수다.
미국 등지의 유명 대학으로 학자들이 몰려오는 것은 흔한 일이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수학자도 국내에서 학술 활동을 하지 못한건 아쉽긴하다.
이 외에도 풀커슨 상을 수상한 김정한 교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새롭게 증명한 김민형 교수,
라즈스펠트 예상을 증명한 황준묵 교수
리드 추측, 로타 추측을 증명한 허준이 박사
고등학생들 수학하라며 갈구고 있는 back 2 basics 등
유명한 수학자들이 있지만
다들 살아계셔서.. 나중에 전설이 되면 다뤄보도록하겠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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